스티븐 잡스의 스텐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by 조량 posted May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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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세계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본 것 처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에 3가지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3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전 리드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하였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죠.
그녀는 제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으로 입양되기로
되었죠. 그러나 제가 태어난 순간에 그들은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었던 양부모는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기를 원하십니까?”  양부모님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부는 고졸도 아니어서 저의 친모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몇 달 후 저의 양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친모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곳 스텐포드 대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돌아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것인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이 평생동안 모아뒀던 돈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되거라 믿고 자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 후엔 재미없는 필수 과목들을 듣는 것을 그만두고
보다 더 흥미있는 강의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 머물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루바닥에서 자기도 했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떼우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위해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들만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여있는 상표들 손으로 아름답게 써낸 서체 예술이었습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글씨체의 여백과 그 다양함을 무엇이 글자체의 위대함에 필요한 요소인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깊고,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두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나 자동자간 맟춤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그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그런 서체 수업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고 PC 에는 오늘날에 뛰어난 글씨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것이라고는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짱, 운명, 카르마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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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해냈습니다.
워즈와 제가 차고에서 애플사를 세운 것은 제가 20세때 일입니다. 차고에서 열심히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후에 4000명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 메킨토시를 출시했고
저는 3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어긎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우리의 회사 경영진은 존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세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인생에 초점을 잃었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몇 개월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 밴처세대의 명예를 실추신킨 것 같았습니다.
제게 넘겨진 바톤을 놓친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HP)와 밥노이스(인텔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까지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실패에 본보기였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 조차도 그런 마음을 꺽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제가 해고당한것은 제 인생의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불확실함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저는 NEXT와 PIXAR를 세우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에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에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 복귀 후 NEXT시절 개발되었던 기술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제 일을 사랑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연인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은 여러분 삶의 많은 부분을 체울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 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입니다.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전심을 다해 찾아내면 그때는 알게될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추구하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었습니다.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이 글귀를 지난 33년간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하였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곧 ‘죽는다’ 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진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길어봤자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 것을 단 몇 달 만에 다 해내야 한다는 말이었고
임종할 때 가족들이 쉽도록 매사를 정리하라는 뜻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위장을 지난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
췌장에서 암세포를 체취하는 조직 검사였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되었습니다.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 수십년간을 그렇게 가까이 가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때로는 죽음이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 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초자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하지는 않죠
그리고 죽음은 여전히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듭니다.
죽음은 구세대를 대신하도록 신세대에게 길을 터줍니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이 곧 신세대 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여러분도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낭비 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각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의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또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 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 같은 것이었습니다.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쓴것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것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구글이 등장하기 35년전 책으로된
구글과 같은 것이었지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드와 친구들은 몇번의 개정판을 만들어 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에 최종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표지에는 이른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겁없는 사람이나 히치하이킹 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저는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바람을 가집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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