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로 유명한 1300년전 고구려의 무장
대막리지라는 최고권력자로써 후대에 고구려의 패망의 원흉이라 불리우는 그다.
그의 이야기 첫번째를 이야기 한다.
1.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는가?
연개소문이 있을 시대에 5대 대인들은 동북아 아시아의 패권의 흐름을 읽었을까? 당나라의 연이은 주변국가의 침략에 맞서 모두들 친당정책을 꾀하여 900년 역사 동안 중국과의 대면체제를 친당체제로 바꾼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다.
또한 수나라 300만대군의 등 수백년동안 침탈과 전쟁의 후유증을 가지고 이젠 전쟁 보다는 평화를 증진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안일화된 태도를 내 비치는 행동밖에는 되지 못한다.
끈임없는 세계정세에 안일화된 태도는 동부대가의 변화 흐름을 맞바꾸고자 개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즉 외세의 흐름을 준비하고자 국민다수의 전쟁이 내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내부의 전쟁은 혁명자의 인명에 의해 일정 시간대에 집중될 수 있었으나, 이것도 한계적인 시간일 뿐 연합체제의 구조를 이루지 못하면 다시 언젠가는 독재도 무너진다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이로 시대적 배경에 따라 꿈의 크기를 아니면 다가올 재난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연개소문은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 것이다.
2. 연개소문의 체제의 효율성
일개 동부대인의 위치로 대막리지라는 정치,경제적 총수로 임명된 독재자는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최고의 전쟁을 효율적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중앙집권적 기구가 생긴것이다. 즉 시간의 여유를 준비하지 않은체 단일화된 의사결정기구를 설정하여 모든 국가시스템을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유동적인 시스템을 나타내게 한 것이다.
당나라가 그 시대 어떤 나라였는가? 가장 많은 영토를 침략하고 20년동안 새로운 무기와 전쟁기술을 최고수준까지 올려놓은 최강국인 것이다. 이 시대에 그대로 맞대응 했다간 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천재적 독재자를 통해 한동안 그 여파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독재자는 중앙집권적인 기구를 통해 왕권강화와 단일화된 획기적인 국가건설기구라면 그것은 반드시 유용할 것이다. 다만 왕이 아닌 막부의 시스템이라는 것과 다른 권력과의 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 아쉬운 점이다.
이는 권력구조의 양상이며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는 정치체제 시스템이지만 바깥상황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국내의 치세를 단행시킬 수 있겠는가?
먼저 국민에게 대호소를 통한 의견을 하나로 뭉치는데 그 영향이 있었겠지만 대국을 대면한 인재의 필요성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될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1당 100의 임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1대 10의 인재를 발굴하면 안된다. 1당 100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원을 적절한 리더쉽 교육을 통한 시스템 구조를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인구의 수를 비교해도 우리는 그들과 동등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1:1로 싸우면 지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 그리고 전략과 전술을 상상의 벽을 깸으로써 창의적이고 돌발적인 싸움으로 우리 나라는 버텨왔던 것이다.
산간지방에 성을 쌓고, 수성을 하면서 전법을 구사하는 것. 이는 평지에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인명이 부족하니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옛 선조의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지혜... 돈이 적다고 우울하지 말고, 사람이 없다고 우쭐하지말고, 자연을 이용해서 천하를 호령했던 옛 선인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