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대리고,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그러자 어린이는 장남감 코너에서 장남감을 사달라며 때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있던 없던 간에 자기 동네 친구들은 다들 이것을 가지고 논다면서 울고불고 사달라고 하고 있다.
티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에서 나왔다고 저거 갖고 싶다고 때를 쓰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속도 모른체 그냥 자기가 보고 갖고 싶은 것만 이야기 하고 있다. 남이 갖고 있다거나 광고효과에 당하거나
어머니는 사주고 싶은 마음이 굴둑 같으나 지금 가진 경제적 여유가 넉넉치 않아 못사주는 안타까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덩이를 매 두들기며 나중에 사준다고 어린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랫다. 자신의 경제적 흐름과 변화의 위험성을 알지도 못한채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서 좋은 제도가 있으니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엇다. 외국의 선진화된 복지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또는 사회적인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맞는 이치인지 어긋난 이치인지는 각 정계화된 데이터로 측정이 가능하다. 대충 같다고 해서 같은것이 아니라
진정한 문제 해결은 스스로 찾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선순위어야 하지 절대적인 외부형식의 도입은 적당하지 않다.
당신 또는 나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웃나라 도입된 새 제도의 경우에는 이러한 형태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라고
하지만 빼먹은 것인 있다. 그 전단계인 "원인"의 단계이다. 또한 아무리 원인이 같다 하더라도 도중에 틀린 변수 한개만
도입되더라도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는 달라 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마땅한 제도가 있는지 찾기 보다는
스스로 대응 방안을 창조하는 방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스스로 방안을 찾는 것은 수많은 지역민들과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함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