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직무를 담당한 자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주군에 이익이 되는 의견을 널리 받아들이도록 하라. 만일 작은 불만이 있는 사람을 멀리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곤란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국가의 큰 일에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다른 의견이 타당하다면 찢어진 신발을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처럼 하라.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스럽다면 모두 할 수 없다. 오직 서원직(서서)만은 이러한 일에 처하여 미혹되지 않았고, 또 동유재(동화)는 직무를 담당한 7년동안 불충분한 점이 있으면 10번씩 반복하여 상담하고 지적해 내었다. 진실로 자네들이 서원직의 10분의 1만이라도 배울 수 있고, 동유재처럼 돌이켜 검토하는 태도를 갖고 국가에 충성한다면, 나 또한 잘못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또 말했다.
“나는 이전에 처음에는 최주평(崔州平)과 사귀면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자주 지적받을 수 있었으며, 후에는 서원직(서서)과 사귀어 그의 가르침을 여러 번 받았다. 이전에 동유재(동화)와 함께 일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신의 의견을 전부 말했고, 후에 호위도(호제)가 일을 맡으면서는 여러 차례 간언을 하여 부당한 결정을 제지하였다. 비록 내 성품이 우매하고 닦여지지 않아 그들의 의견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지라도 이 네 명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하게 지냈으며, 이는 그들의 직언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제갈량이 동화가 죽은 후에 부하들에게 동화에 대한 이야기로 훈계를 했을 정도로 제갈량이 이처럼 동화를 아꼈던 추념의 정은 깊었다.